새가 앉아 있는 달력 뒷 장에 인사말과 레이첼 카슨에 대한 간단한 소개, 레이첼 카슨의 마지막 연설(1963)을 손으로 옮겨 적었습니다.
그 중 레이첼 카슨의 마지막 연설문을 소개합니다.
[···] 인간이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새롭고 겸허한 생각입니다. 특히 이것은 원자력 시대에 생겨난 생각입니다. 진보에 대한 자만심과 문명의 이기에 대한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선을 위해서는 둔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걱정스럽지만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인간의 두뇌의 놀라운 창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의 얼굴을 바꾸는 인간의 힘이 선을 위한 지혜와 다음 세대를 위한 막중한 책임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건 아닌지 이제야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과 인간의 관계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제 머릿속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믿음과는 반대로, 인간은 세계와 떨어져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물리적·화학적·생물적인 힘의 상호작용 한가운데에서, 환경과의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교류 속에서 살아갑니다. 저에게 주어진 '우리 환경의 오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오늘 밤 제가 무엇을 가장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할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천지가 개벽한 이래 인간이 가장 난잡한 동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초기에는 이것이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인간의 수가 적었고, 집들도 흩어져 있었습니다. 또 산업이 발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염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 증 하나입니다. 땅과 공기, 물을 더럽히는 갖가지 종류의 오염을 나열하며 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은 학식있고 지적인 분들이시기에 이러한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실거라고 확신합니다. 대신에 저는 환경 오염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위태로운 상황을 조절할 시작점으로서, 유용하고 필수적이라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모든 이야기의 저변에는 환경과 생물의 관계라는 개념이 깔려 있기 때문에 우선 이 행성의 초기 역사를 여러분께 상기시키면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 생태계에 정적인 것은 없습니다.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지요. 생태계는 힘과 물질을 받고, 변형하고, 발산합니다. 생명체들은 정적인 균형보다는 동적인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것은 아주 상식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현대적 삶의 방식이 만들어낸 엄청난 쓰레기 처리 문제에 직면할 때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과학의 안내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만 안보이면 된다며 양탄자 밑으로 먼지를 쓸어 넣어 버리는 속담 속의 형편없는 살림꾼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가져온 온갖 종류의 쓰레기를 시내에 갖다 버립니다. 우리는 수백만 개의 굴뚝과 쓰레기 소각장에서 배출되는 연기와 유독 가스를 대기로 내보냅니다. 대기가 그러한 것들을 수용할 만크 충분히 광활하다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제는 심지어 바다까지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온갖 종류의 쓰레기뿐만 아니라 원자력 시대의 산물인 독성 폐기물까지도 버리는 곳으로 말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렇게 해로운 물질을 자연에 갖다 버리는 것이 그저 단순한 행동,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복합적인 생태계의 본성을, 우리가 너무 늦어서야 예견하게 되는 그런 면에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배리 코머너 씨는 지난 겨울 워싱턴에서 있었던 대기 오염 회의에서, 결과로 나타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새로운 과학 기술과 관련된 어떠한 위험성에 대해서도 좀처럼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그 과학 기술이 경제계와 정치계에 충분히 헌신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을 바꾸기 불가능한 시점에 도달합니다.
[···]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오류 속에서 전체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개척 시대에나 적절할 생각들을 너무 오래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어넣는 무엇이든 수용할 만큼 강이나 공기, 바다가 방대하다는 생각은 더는 지속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농업 부서의 장이었던, 한 유능할 법한 과학자가 '오염물의 희석'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오염물의 희석'이라는 마법의 구절이 모든 문제에 해답이라도 제시한다는 듯이 그 말을 반복했습니다.
브라운 박사님께서도 오늘 말씀하시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체적으로 현재 인구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보내는 온갖 오염 물질의 양은 실로 막대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오늘날의 오염 물질의 성분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입니다. 그 물질들은 살아 있는 유기체의 생물학적 반응에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주 중요한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오염 물질이 우리가 놓아둔 장소에 그대로 머무르지도, 내버렸던 형태 그대로 남아있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 현대 오염 문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방사성 폐기물을 바다에 내버리는 것입니다. 핵분열의 부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그 방대하고 겉보기에 끝없는 바다는 매력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다는 오염된 쓰레기들과 원자력 시대의 저준위 폐기물을 묻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의 안전성 여부를 결정하는 연구들은 대부분 행동이 취해지기 전이 아니라 그 다음에야 나왔습니다. 또한 폐기물의 운명에 대한 우리의 정밀한 지식을 앞질러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습니다.
[···] 모든 것이 괜찮다고 되풀이하며 안심시키는 분위기 속에서 대중들의 지지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이런 종류의 조사를 위한 자금도 거의 없습니다. 저는 대중들이 현대의 환경 속에 존재하는 그러한 위험들에 대한 사실을 듣기 바랍니다. 저는 대중들이 취해야 할 신중하고 필수적인 조치를 현명히 결정하기 바랍니다.
[···] 우리 세계에 오염을 일으키는 이 모든 문제들 위에는 도덕적 책임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비단 우리 세대에 대한 책임 뿐만이 아닙니다. 미래 세대들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살아있는 세대의 신체적 피해에 대해서는 걱정합니다. 그렇지만 위험은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 즉 오늘날의 결정을 내리는 데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세대들에게 훨씬 큽니다. 또한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책임은 막중해집니다.
[···] 사실상 생물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현상 중 하나는 생물의 세계 전반에 걸쳐 유전 체계가 기본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환경 오염과 그것이 생명체에게 주는 영향이라는 우리의 주제와 다시 한 번 연관됩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이상하리만치 꺼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강으로 유입된 농약이 물고기 수천 마리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물을 마실지도 모를 인간에게 이 화학 물질이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합니다. 새들이 전부 죽어나간다는 보도도 그런 일이 우리에게는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시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관점을 논리적인 결론으로 이끌고 간다면, 이는 수백만의 실험실 동물들을 포함해, 모든 정밀한 실험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놀랐습니다. 이런 안일한 생각은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고, 공식적인 관점이나 결정에 대한, 또는 결단력 있는 조치가 없음에 대한 함축적 근거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오늘 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의 깊은 중요성을 느낄 수 있을지 가끔씩은 궁금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를 거부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즉,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들처럼 환경의 힘에 영향을 받는 광대한 지구 생태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이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저는 어떤 평행선을 발견합니다. 다윈이 진화 이론을 발표했을 때 이어졌던 소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이전에 존재했던 생물들이 인간의 기원이라는, 그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부정했습니다. 비단 대중들뿐만이 아니라 다윈의 과학 분야 동료들까지도 이를 부인했습니다. 긴 세월이 지나서야 이 개념은《종의 기원》에 정리되어 확고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육 받은 사람이라면 아무도 진화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명백한 결과를 부인합니다. 즉, 우리와 진화라는 끈으로 연결된 다른 모든 수천 종의 생물을 지배하는 똑같은 환경으로부터 인간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기원을, 그리고 모든 생물이 진화하고 공존하는 세계와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질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인간 내부에 숨겨진 어떤 두려움과, 오랫동안 잊혀진 어떤 경험이 그렇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마침내 빅토리아인들은 다윈의 개념에 대한 충격과 당황 때문에 스스로 후퇴하게 만들었던 두려움과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역시 환경에 대한 우리의 진정한 관계를 받아들일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지적 해방이라는 분위기 속에서만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