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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품 없는 여행 프로젝트, 형편없는 살림꾼을 정리해 페이퍼 2019년 봄호에 기고했습니다. 일부 아래에 옮깁니다.


나의 치앙마이 - 도전! 제로웨이스트 태국 여행
일회용품 없고 쓰레기도 안 만드는 제로웨이스트 태국 여행기 / 좋아은경

일회용품 없이 태국여행을 해보자! 불현듯 의지가 솟아올랐던 것은 왜일까?
최근에 쓰레기 대란으로 떠들썩했잖아.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많아질 거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언젠가부터 일상적으로 나누고 빨대가 코에 껴서 아파하는 거북이, 플라스틱 고리가 부리에 껴서 굶어 죽은 새들의 사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치고 있더라.

해안으로 떠밀려온 죽은 고래의 뱃속에 가득한 플라스틱을 보며 와, 저 엄청난 양을 봐, 경악하다 문득, 저거 설마 내가 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 나는 분리수거를 아주 열심히 하는 우주의 먼지 같은 사람이지만 그 먼지가 만든 쓰레기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누가 알겠어?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5%밖에 안 된다는데. 누군가는 내가 만든 쓰레기 위에 집을 짓고, 내가 버린 쓰레기를 뒤적일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 또 속이 상하네...

무엇보다 산술적으로 정말 간단했어! 여행하는 동안 내가 플라스틱에 담긴 생수를 하루에 두 병만 마셔도 백 개가 훌쩍 넘는다는 것. 음식이 담긴 작은 비닐을 하루에 여섯 장만 받아도 삼백 장이 넘는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아주 놀랍게도 텀블러 하나와 밀폐용기 한 개, 장바구니 한 장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것.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 여행을 하겠다고 결심이 섰지만, 여행이 고행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중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가볍게 생각하려고 했어. 하나만 줄이자. 하나라도 줄이자. 시행착오를 겪자. 그리고 솔직하게 기록하자.

작은 배낭을 메고 가기에 제로웨이스트 여행 준비물 역시 간소하게 꾸렸어. 무엇보다 새로 사지 않고 집에서 찾아보고 적당한 것이 없으면 주변에서 구했지. 출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새로 사야 하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어쩌지? 집에 있을 것 같은데 당장 찾을 수가 없네. 지금 나가서 하나 사줄까?” “취지는 그게 아니라니까!” 함께 웃으며 어떻게든 내 여행을 도와주려는 친구들의 응원이 가득해서 떠나기 전부터 좋았어. 뭘 그렇게까지 해? 그런다고 얼마나 바뀌겠어? 김새는 소리 들었으면 어땠을까? 더 전투적으로 했을까?

 

<제로웨이스트 태국 여행 준비물>
1. 약간 깊은 플라스틱 밀폐 용기. 집에서는 활용도가 전혀 없었는데 다양한 음식을 담기에 좋았다.

2. 스테인리스 젓가락. 꼬치 대용으로 사용 가능. 내 인생 첫 젓가락으로, 어린이용이라 밀폐 용기에도 딱 맞게 들어감.

3. 티스푼. 아이스크림 및 각종 디저트 먹을 때 필요했다. 애초에 챙겨가지 않아 방콕 친구에게 가장 가벼운 티스푼을 하나 빌림.

4. 가벼운 접이식 장바구니. 2006년(!) 에코 프러덕트(친환경상품박람회)에 견학 가서 받았다. 매우 낡았지만 계속 가지고 다닌다.

5. 강렬한 무늬의 손수건 3장. 쓰지 않는 걸 선물 받은 것으로 얼룩이 생겨도 걱정 없다. 크기가 넉넉해서 손수건 본연의 기능 외에도 채소나 빵 등 음식을 싸기도 하고 보자기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2장만 가지고 다님.

6. 각종 음료를 받아 마신 뒤 씻기 좋은 입구가 넓은 텀블러와 물 담는 용도의 밀폐가 잘되는 작은 텀블러. 두 개 모두 가지고 다니며 일행이 필요하다고 하면 빌려줬다. 연희동의 일회용품 없는 카페 <보틀팩토리>가 시민들에게 시증받은 것을 재기증받았다.

7. 모든 것은 얇고 가벼운 에코백 속으로 쓱. 세탁이 간편하고 건조도 빠르다. 크기도 커서 장바구니 역할을 함께함.

 

부피는 조금 되지만 가벼워서 그방 익숙해졌어. 정해진 기간에 한정된 물품을 줄이는 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되더라. 티셔츠에 태국어로 문구를 적어 입고 다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태국인 친구에게 필수 문장을 배운 것이 효과만점 이었어. 주문하면서 영어로 말하는 것보다 나그사긋한 태국어로 말했기에 나의 '특별 요구사항'은 대부분 기분 좋게 받아들여 진 것 같아.

 

처음에는 한가해 보이는 곳에서만 시도하다가 나중에는 번호표를 받아 줄 서서 주문하는 인기 노점에서도 해냈어! 유후! '어떻게 일회용 플라스틱과 비닐 없이 음식을 가져가나' 하는 호기심에 찬 눈빛을 받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고, 칭찬과 따봉을 되게 많이 받았어.

 

여유 있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중요했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자책감 들어 표정이 어두워졌는데, 상대방은 잘못을 따지거나 유난 떠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더라고. 동행이 생겼을 때 각박하게 굴지 않으려다 오히려 꼬일 때도 있었어. 일회용 컵이나 빨대를 받아놓고 쭈뼛거리면 되레 서로 민망하고 미안한 상황이 돼버려서 명쾌하고 유쾌하게 말하는 기술이 필요하더라.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밤. 머물던 호스텔에서 일하는 친구가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어. 밤마다 간식거리도 사다주고 고마운 것이 많았다며. 그는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했고 "그런데 이거 다 비닐에 싸주겠지?" 나의 한마디에 한걸음에 숙소로 달려가 그릇을 챙겨왔어. 정말 감동했지. 아슬아슬 음식이 가득 담긴 그릇을 들고 돌아가는 길에 진귀하게 쳐다보는 다른 여행자들을 향해 "일회용 비닐봉지를 쓰지 않으려고요!"라고 말했고, 그들은 "오, 정말? 대단해!" 하며 호탕하게 웃음을 나눴어. 그 기분 좋은 순간들이 지금 떠오른다.

 

모든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방콕 친구네 돌아왔을 때, 친구는 내가 선물한 접이식 장바구니를 그동안 항상 사용했다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 음식물쓰레기 버릴 비닐 봉투 하나 집에 없다고 웃어 제꼈어. 그 친구는 자신의 부엌에 잠들어 있던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고, 음료를 받아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우아, 선생님. 그거 예뻐요? 새것이에요?" 하고 물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텀블러 사용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줬어. 아이들은 곧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될 거라고.

 

<제로웨이스트 태국 여행을 위한 필수 태국어>

* 빨대는 필요 없어요 = 마이 아오 러얻 카

* 비닐봉지는 필요 없어요 = 마이 마오 투웅 카

* 제 컵이 있어요 = 아오 께에오 마엥 카

* 제 용기가 있어요 = 아오 끌렁 마엥 카

* 고맙습니다 = 컵쿤 카 (화자가 남자의 경우 '컵쿤 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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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쓸(Magazine SSSSL) 4호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