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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편지
다시, 레이첼 카슨께


처음 편지를 보내고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오랫만이에요.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여행을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하고 이런저런 일을 챙기느라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답니다.

작년 여름, 해가 지난 달력을 해체하다가 용수철로 새를 만들었어요. 용수철을 종이에서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다리가 연결된 채 달력 위에 앉아있는 새 한마리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린캔바스가 주최하는 녹색여름전에 출품하게 되었어요.

하나 둘 늘어난 달력 위의 새들에게 침묵의 봄이라는 이름이 붙였고, 오래 전에 당신에게 쓴 편지가 생각났어요. 침묵의 봄이 출간된지 50주년이 되던 해였어요. 50주년이 지나고 다가오는 새 봄에 대학로의 작은 책방에서 당신의 이름을 새긴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이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불과 몇 개월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첫, 개인전이에요.

생각이 행위로, 작품으로, 전시로 확장되며 이어지는 과정은 발견과 재발견의 연속이었어요.
한번 눈여겨보기 시작하니, 참 많은 종류의 철사가 다양한 형태로 제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다시 쓰여지길 기다리며 보관되기도 하지만 대개 잠깐 쓰임을 다하고 버려지는 철사들이 수북했지요. 작업을 할수록 얼마나 많은 것들이 손쉬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이고 버려지는지 절감하였습니다. 화려한 금박치장을 벗겨내니 벌겋게 녹이 쓸어있는 포장용 철사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했어요.

다양한 경로로 버려지기 직전 저에게 온 철사로 새를 만들었어요. 소중히 간직될 수도 있고 그대로 움켜쥐어 쓰레기통으로 향할 수도 있지요. 자원으로 보이기도 하고 작품으로 보이기도 하고 쓰레기로 보이기도 해요. 시선이 아주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참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졸업식 날, 신영복 선생님께서 워즈워드의 시간의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누군가 해설하기를, 아주 노련한 곤충채집학자가 가느다란 은침으로 잠자리를 하나 채집해 표본실에 놓았고 아름다운 5월의 어느날 그 은침을 뽑으면 거짓말처럼 잠자리가 확 날라간다구요.

여기 차갑게 놓인 새들도 화창한 봄 날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철사를 펴고 구부릴 때마다 꿈꾸듯 그려봤습니다.


인간은 미래를 예견하고 그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지구를 파괴함으로써 그 자신도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한 앨버트 슈바이처를 기리며 '침묵의 봄'의 첫 페이지를 연 당신.

우리는 지금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곳이 서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한 너무나도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다라는 글로 같은 책의 마지막 장을 연 당신을 기리며 용기를 내어 첫 개인전을 엽니다.

그 곳에서 기뻐하셨으면 좋겠어요.


2013년 봄을 기다리며
좋아은경 올림




좋아은경 첫 개인전
레이첼 카슨에게 보내는 편지

2013.3.4(월)-3.31(일) 오후 2시-8시
책방이음&갤러리
전일개관 입장료없음

+ 전시 사진 전체 보기 http://yoaek.tumblr.com/tagged/1st-letter-to-rachel-carson